[뚜벅이 여행기10]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 관람 후기 – 백제 예술의 혼!

들어가면서

부여에서 이튿날을 맞이했다. 오후에 다음 목적지인 광주로 가기 전 부여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바쁘게 움직였다.

아침을 먹고 몸을 정갈하게 한 후에 나는 길을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바로 국립부여박물관이었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많은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어떤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개관 시간이 아침 9시이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부여박물관

사진=카카오맵

국립부여박물관은 부여 시내 중심부에서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라서 부여박물관까지 걸어갔다. 입구를 지나자 국립부여박물관을 알리는 간판석이 있었다.

입구에는 넉넉한 주차공간이 있는 주차장이 있었고 전기차 충전을 위한 시설도 있었다.

국립공주박물관처럼 입구에서 전시동까지 가는 길이 길었다.

금성산을 배경으로 지어진 국립부여박물관이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원들이 관람객들을 상대로 개인방역과 QR코드 인증 절차를 안내하고 있었다.

부여의 선사와 고대문화

첫 번째 전시실은 부여의 선사와 고대문화라는 주제로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교과서에서 봤던 토기와 석기 등의 유물들이 있었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청동시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취락 유적이다. 송국리식 토기와 석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독널무덤은 위와 같은 독널에 시신을 안치 하는 매장방법이라고 한다. 위 독널의 경우 크기가 작은데 어린 아이를 위한 것이거나 성인이 죽은 후 뼈만 추려서 매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락바퀴, 간돌검, 바퀴날도끼 등 여러 석기 유물들이 보였다.

돌을 갈아서 만든 간돌검들이 눈에 띄었다.

본격적으로 청동으로 만든 한국식 동검과 청동도끼등이 나왔다.

영화에서 볼 법한 청동꺽창도 있었다.

대쪽모양동기

부여 합송리 유적

청동기 시대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거울이 있었다.

철기시대를 맞아 제작된 철기 유물들이 있었다.

사비백제와 백제금동대향로

두 번째 전시실은 역사상 부여가 가장 꽃을 피웠던 사비시대 백제 유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부여)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관북리유적에서 너비가 35미터가 넘는 대형 전각건물터와 동서남북으로 구획된 도로, 공방과 저장시설, 연못과 정원, 중앙관청 및 왕궁관련 시설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령왕릉에서 본 것과 비슷한 연꽃문의 전돌들이 있었다.

부여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철제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백제 성황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 천도를 단행한 뒤에 통치체제를 체계적으로 정비했다. 당시 사비에는 1만여 가구가 거주를 했다고 한다. 중앙관서로 22부를 두고 16관등제를 확립했다고 한다.

정림사는 부소산성을 배후로 하는 왕궁지에서 궁남지로 이어지는 남북중심축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사비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능산리 사찰 유물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백제 금동대향로

드디어 이곳 국립부여박물관에 온 진짜 이유가 몇 발자국 앞에 있었다.

특별한 유물인 만큼 단독 전시실에 그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1993년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조사 중 발견되었다.

금동대향로는 뚜껑, 몸체,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이 있다.

산 모양의 뚜껑에는 다양한 인물, 동물, 신비한 힘을 가진 괴수 등이 여러 산봉우리 사이에 장식되어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봉우리 사이사이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멍 12개가 있다.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용을 표현한 받침은 용의 역동적인 몸짓과 향로를 안정적으로 받쳐서 균형미를 돋보이게 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구리와 주석을 녹인 청동을 거푸집에 부어 형태를 만든 후 그 위에 금을 입혔다. 일정한 두께와 균일한 도금층은 백제 장인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금동대향로의 높이는 61.8cm, 무게는 11.8kg이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금동대향로를 이렇게 마주하니 왠지 모를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적어도 1400여년 전에 제작된 금동대향로가 현재까지 이렇게 남아준 것만 해도 고마웠다.

백제의 불교문화

세 번째 전시실에는 백제의 불교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전시실에는 백제 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치미는 목저건물 지붕을 장식하는 특수기와로 하늘로 펼친 새의 날개깃 형상을 하고 있다.

백제 사비시대 유적인 왕흥사지, 부소산사지, 익산 미륵사지, 정림사지, 군수리사지, 능산리사지 등에서 치미가 출도되었다고 한다.

부여 왕흥사는 왕실에서 세운 사찰로, 이곳의 목탑 터에서 부처의 사리를 담아모시는 사리기가 발견되었다.

사리기에는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왕흥사를 창건한 내용이 적혀있다.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사리기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3겹으로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사리는 나오지 않았다.

기증 전시관

마지막 전시실에는 이곳 국립부여박물관에 기증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을 매장할 때 사용한 큰 독널이 있었다.

진품명품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분청사기 연꽃 물고기무늬 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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